Saturday, July 12, 2014

주남지의 호수위로 고니떼들이 날다

주남저수지의 수면을 뒤덮은 고방오리떼 사이로 큰고니가 유유히 떠가고 있다. 주남지의 큰고니들은 사람들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아 물억새를 심어놓은 탐조대 방죽에서 맨눈으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고니. 흔히 ‘백조’라고 하지요. 겨울 철새 중 ‘기품’에 대해 말하자면 단연 고니입니다. 커다란 체구부터가 그렇고, 순백의 몸 색깔도 그렇거니와 우아하게 물 위를 미끄러지는 모습도 그렇습니다. 수면을 차고 달리다가 큰 날개를 펴고 이륙하는 모습이나 목을 길게 빼고 폭격기 편대처럼 무리 지어 나는 모습에서도 당당한 기품이 느껴집니다.

경남 창원의 주남저수지에는 이번 겨울 750마리쯤의 고니가 찾아왔습니다. 청둥오리와 청머리 쇠오리, 고방오리 등 주남지를 찾은 80여 종의 다른 겨울 철새까지 더하면 대략 1만 마리쯤이랍니다. 겨울이면 줄잡아 수십 만 마리의 철새가 찾아온다는 천수만이나 금강하구언에다 대면 명함도 못내밀 정도라지만, 그럼에도 주남지를 찾아가는 건 거기서 고니를 만나는 감동이 다른 곳보다 몇 배는 더하기 때문입니다.

주남지의 고니들은 방죽 가까운 수면 위에서 깃을 치며 우아한 자태를 뽐내기도 했고, 저수지 너머 무논에 일제히 내려앉아 탐조에 나선 아이들과 가까이서 눈을 맞추기도 했습니다.

주남지가 있는 창원. 고만고만한 지방의 중소도시쯤으로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지난 2010년 7월 창원과 마산, 진해시가 합쳐져 이뤄진 창원시는 말 그대로 ‘거대도시’입니다.

창원을 보겠다면 고층빌딩 즐비한 창원의 도시 풍경과 가곡 ‘가고파’에 등장하는 마산의 호수 같은 고향바다, 그리고 근대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진해까지 다 돌아봐야 합니다. 진해야 벚꽃 필 때를 겨냥해 아껴둔다 해도 나머지 것만으로도 하루 일정으로 어림도 없습니다.

# 주남지의 호수위로 고니떼들이 날다

폐허가 된 백월산 자락의 백월사. 신라시대 석등이 처마를 받치고 있다.
채 동이 트기 전 주남지의 이른 새벽. 대열을 이룬 오리떼들이 수런거리며 차가운 겨울의 푸른 대기를 가르며 정수리 위로 날아올랐다. 노랑부리 저어새들은 이른 새벽부터 저수지를 누비며 삭은 물풀을 뒤져 먹이를 찾느라 여념이 없고, 탐조전망대 부근의 무논 위에서 고니들은 순백의 깃털에 목을 파묻고 있다. 

붉은 겨울 햇살이 퍼져가자, 사방에서 철새들이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훗훗훗…, 과안 과안…. 고니들도 하나 둘 머리를 빼들고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몇 마리의 고니가 얼어붙은 무논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걸 시작으로 뒤이어 고니들의 비행이 시작됐다. 붉은 햇살이 번져가는 하늘 위로 목을 길게 뺀 고니들이 마치 일사불란한 대열을 이룬 전폭기처럼 날아오르다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수면 위로 착륙했다. 

창원의 주남저수지는 낙동강의 범람을 받아주던 배후습지에 1920년대 둑을 쌓고 준설을 해서 만들어졌다. 주남지는 주남저수지 한 곳을 일컫는 이름이기도 하고, 인근의 산남, 주남, 동판 등 3곳의 저수지를 한데 묶어서 이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주남지는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거대한 저수지였다. 그때만 해도 ‘주남’이란 이름조차 없었다. 마을 이름을 따 산남늪, 용산늪, 가월늪이라고 불렀고, 더러는 그냥 강이라고 불렀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후반부터 가창오리를 비롯한 수많은 철새들이 날아오면서 비로소 이름을 얻게 됐다. 

주남지에는 겨울이면 고니, 재두루미, 고방오리, 청둥오리, 청머리오리 등의 철새들이 날아와 한 철을 보낸다. 저수지의 수면 위는 물론이고 방죽 너머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도 온통 철새들로 수런거린다. 예년에는 가창오리와 기러기가 많이 날아들었다는데, 올해는 가창오리나 기러기 대신 청둥오리와 ‘백조’라고 불리는 고니들이 많이 날아왔다. 기러기와 가창오리들이 그해 겨울이 추우면 남쪽으로 더 내려가는데 겨울 추위가 유독 매서운 올해는 해남의 고천암호 일대에서 겨울을 나는 모양이었다. 

올 겨울 주남지에 날아든 고니는 열 마리 중 일곱 마리쯤이 이름 그대로 몸집이 큰 ‘큰고니’ 들이었다. 주남지의 고니들은 겁이 없다. 고니들은 아예 사람의 발이 닿지 않는 저수지 복판쯤에 내려앉는 게 보통인데, 주남지의 고니들은 방죽 가까이에 몰려앉아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다. 심지어 도로 바로 옆의 무논에 수십 마리씩 내려앉아 웬만한 기척에도 날아가지 않고 고개를 빼들고 이쪽을 살핀다. 이렇듯 주남지의 철새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아마도 탐조대 부근의 무논에 매일 오후 2시 무렵 볍씨와 고구마를 먹이로 주고 있기 때문이리라. 먹이를 주는 시간에 맞춰 주남지를 찾아간다면 탐조용 망원경 없이 맨눈으로도 고니의 기품 있는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철새탐조라면 가창오리 수만 마리가 일제히 날아올라 하늘을 가득 메우는 ‘장관’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그보다 고요한 겨울 저수지 수면 위를 오리떼와 고니들의 모습을 숨죽이고 감상하는 맛도 못지않다. 이렇듯 철새 한 마리, 한 마리의 움직임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게 감동이 오히려 더 크다는 것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살아있는 생명과 마주하는 감동은 상상했던 것 이상이다. 

문신미술관 언덕에서 내려다본 마산항 풍경. 마산만의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하다.

백매화 한 송이가 봄의 기운을 알리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의 노리매공원에 피어난 백매화. 순백의 꽃잎에 꽃받침의 붉은 기운이 은은하게 감돈다. 앞서 제주 한림공원의 매화는 진작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노리매공원을 거쳐 서귀포의 매화나무에도 꽃들이 팝콘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겨울의 끝이 머지않았다.


‘봄의 경보’를 발령합니다. 매복해 있던 봄의 척후병들이 지난주부터 제주에서 막 기동을 시작했습니다. 뒤이어 당도할 본진 병력의 진주에 앞서 정찰을 위해 제주 땅에 상륙한 것이지요. 시작은 서귀포시 한림읍의 한림공원이었습니다. 수선화 동산 양지바른 쪽 매화나무 가지에 백매화 한 송이가 톡 하고 꽃망울을 터뜨린 게 첫 신호였습니다. 뒤를 이은 것은 대정읍 구억리 노리매공원의 매화나무입니다. 가지치기한 나무등걸에 새로 돋은 가지마다 순백의 매화가 다닥다닥 매달렸습니다. 그뒤부터는 아주 걷잡을 수 없습니다.

서귀포의 칠십리시공원 매화동산의 꽃들이 온통 수런거리기 시작했고, 문섬과 섶섬이 바라다보이는 언덕 위의 홍매화 나무는 선혈처럼 붉은 꽃을 피우고는 벌써 꽃잎을 하나 둘 떨구고 있었습니다. 어디 매화뿐이겠습니까. 산방산이 바라다보이는 대정읍의 들에는 진즉부터 수선화가 꽃을 피워냈으며 발밑으로는 봄까치꽃, 광대나물, 별꽃 같은 야생화들이 앞다퉈 아우성 치며 꽃으로 터지고 있었습니다.

봄의 기운은 바다에도 당도해 있었습니다. 유채꽃 일렁이는 해안가 너머 갯바위에는 진초록의 해초들이 융단처럼 깔리기 시작했고, 봄내음에 취한 왜가리들이 갯바위를 딛고서 한껏 게으른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육지는 잇단 폭설과 날선 추위로 봄은 아직 언감생심이지만, 바다 건너 제주에는 입춘을 건너가면서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올리듯 봄의 기운이 번져가고 있는 것이지요.

봄꽃이 앞다퉈 피어나듯 이즈음 제주에는 마을미술사업이 봇물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갤러리와 미술관의 권위 안에 갇혔던 미술이 담을 뛰어넘어 일상으로 넘어와 꽃처럼 환하게 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제주에는 또 이중섭미술관과 기당미술관을 비롯해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등의 내로라하는 미술관이 있습니다. 화사한 봄꽃만으로는 제주까지 간 보람에 값하기 부족하다 싶으면 미술을 일상의 공간으로 가져온 서귀포 일대의 풍경 속을 거닐어본다면 어떻겠습니까.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 용왕난드르마을 해안에 왜가리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본디 여름 철새지만 남쪽지방에서는 텃새가 돼 버린 왜가리가 모처럼의 따스한 봄볕 아래서 먹이사냥을 하고 있다. 제주바다에 번져가는 봄의 기운에서는 평화로움이 읽힌다.




# 백매화 한 송이가 봄의 기운을 알리다

올들어 첫 매화 소식은 제주 섬 서쪽 한림공원에서 시작됐다. 재암수석관 뒤쪽 수선화 정원의 매화나무 가지 끝에 톡 하고 백매화가 터졌다. 봄이 머지않았음을 알리는 올해 첫 매화였다. 그게 벌써 열흘도 더 전의 일이라고 했다. 해마다 공원에서 가장 이른 꽃을 피워내 ‘설중매(雪中梅)’로 이름붙여진 홍매화가 미처 꽃몽우리를 맺기도 전이었다.

첫 꽃에 이어 ‘남고(南古)’라 이름붙은 백매화 나무가 순식간에 타다닥 꽃을 피워냈고, 홍매 ‘홍천조’가 뒤질세라 선혈처럼 진한 붉은 꽃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흘여 만에 가지가 척척 늘어진 70년 묵은 수양백매에까지 꽃이 옮겨 붙었다. 따스한 햇살이 며칠만 더 허락되면 흰 꽃과 붉은 꽃이 한 나무의 가지에서 피어 제주 매화의 명물로 꼽히는 ‘백홍매’에도 희고 붉은 꽃이 피어나리라.

한림공원의 매화 소식은 이제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의 노리매공원으로 건너갔다. ‘노리매’란 ‘놀이’란 우리말에다 매화의 ‘매(梅)’자를 더해 만든 이름. 공원 주인이 20년 넘게 정성으로 길러낸 매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흐드러진 매화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고작 20일 남짓이라, 남은 345일을 위해 동백나무를 비롯한 갖은 꽃나무를 더 많이 심어두긴 했지만 노리매공원의 주인은 누가 뭐라 해도 매화다. 

이쯤에서 살짝 귀띔 한마디. 노리매공원을 찾아간다면 그림보기를 청해보자. 본관 건물 2층에는 제주 출신의 화가 강요배의 매화 그림 한 점이 걸려있다. 화가가 매화를 좋아하는 주인에게 그려준 것이라는데, 여위었으되 힘차게 둥치를 뒤튼 늙은 매화나무 그림의 여운이 깊고도 짙다. 관람객들에게 내보이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그윽한 매화향을 즐긴 뒤 정중하게 그림보기를 청한다면 마다하지는 않을 듯 싶다.

서귀포에 피란 와서 살던 이중섭의 옛집 인근 자구리 해안에 설치된 조형물. 60여년 전 이중섭이 서귀포를 배경으로 그린 ‘게와 아이들’을 그리는 손을 재현했다.

울산바위, 보는 자리마다 다른 형상으로 떠오르다

거대한 바위들로 이뤄진 울산바위 정상. 정상에 오르면 눈으로 뒤덮인 설악의 주능선의 위용과 함께 영랑호와 청초호, 속초항 너머 동해가 펼쳐진다. 여기에 서면 바람 소리가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능선을 타고 넘는다. 바람의 거친 숨소리 앞에서 비로소 ‘울산’이란 바위 이름이 ‘우는 산’에서 왔음을 알게 된다.


겨울 설악(雪岳). 거기에 길들여지지 않는 거대한 짐승이 살고 있습니다. 사나운 이빨로 적의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듯한 바람 소리.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바람 소리에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불면의 밤이었습니다. 차가운 달빛은 교교했고, 보름이 가까운 밤임에도 별빛은 선명하게 반짝였습니다. 달빛 아래 설악의 암릉들이 어둠을 배경으로 왕관의 장식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울산바위를 정면으로 마주 보는 자리. 여기는 강원 고성군 토성면 미시령 옛길의 델피노 골프&리조트입니다. 리조트 C동 613호. 감히 이 자리를 설악의 울산바위를 가장 가까이서 장엄하게 올려다볼 수 있는 곳이라 단언합니다.

울산바위가 가장 아름다웠던 건 이른 새벽이었습니다. 창밖으로 영하 16도의 차갑고 푸른 여명이 번져 가는 시간. 커튼을 열어젖히고 베란다에 서자 순백의 설원 위로 솟은 거대한 울산바위 암릉이 눈앞으로 불쑥 달려들었습니다. 밑둘레만 4㎞에 달한다는 거대한 바위는 압도의 느낌, 그 자체였습니다. 아침 햇살의 비껴 드는 붉은 기운을 받자 울산바위 암봉들은 입체감으로 살아났습니다. 바위의 이빨들이 칼처럼 날카롭고 선명해졌습니다.

공룡능선이나 용아장성에다 대면 어림없지만, 울산바위는 바다를 굽어보는 설악의 바깥 자락 중에서 가장 힘차고 웅장한 풍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때 흔들바위와 함께 설악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던 울산바위는 이른바 ‘공포의 808계단’의 아찔함으로 기억됩니다. 거대한 바위 틈에 사다리처럼 직각으로 세워진 좁은 철계단이 주는 공포는 참 대단했지요. 특히 요즘 같은 겨울에 손바닥이 쩍쩍 달라붙는 난간을 붙잡고서 얼어붙은 철제난간을 위태위태 디디면서 ‘괜히 올라왔다’는 후회의 말을 수도 없이 내뱉곤 했으니까요.

새삼 다시 울산바위를 찾아간 것은 거기에 길이 새로 놓였기 때문입니다. 설악산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난해 10월쯤에 이른바 ‘공포의 철계단’을 철거하곤 좀 더 순한 길을 들여놓았습니다. 노출 암반의 깎아지른 벼랑을 피해 낮은 쪽의 사면에 기대서 오르는 길입니다. 심장이 콩알만 해지는 아찔함은 덜한 대신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고 붉은 둥치를 세우고 장하게 서 있는 금강송들의 위용을 감상하며 오르는 매력적인 길입니다.

울산바위를 오르는 여정에다 강릉 주문진을 끼워 넣었습니다. 울산바위와 그닥 가깝지 않은 이곳을 함께 소개하는 이유는 소돌마을의 바다에 솟은 기암 아들바위 때문입니다. 울산바위의 위용에다 대면 어림도 없긴 합니다만, 산정을 이룬 거대한 암봉이 울산바위라면, 아우성처럼 찢긴 아들바위를 ‘바다의 바위’로 꼽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설악을 향하는 여정에서 오며 가며 고속도로에 오른다면 강릉과 주문진을 들를 수밖에 없는 일이고 보면 울산바위로 향하는 여정에 아들바위를 끼워 넣는 것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을 겁니다. 울산바위와 아들바위. 산에서, 또 바다에서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온 바위를 만나러 갑니다. 




# 울산바위, 보는 자리마다 다른 형상으로 떠오르다

설악의 울산바위는 입체적이다. 따지고 보면 입체적이지 않은 산이 어디 있을까만, 울산바위는 다른 산과 비교해 봐도 유독 그렇다. 울산바위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건 우뚝 솟은 암봉이 사방으로 열어 두고 있는 시선 때문이다. 밑둘레만 4㎞에 달하는 이 거대한 바위는 어디서든 보인다. 거대한 암릉이 뿌리째 북쪽의 탁 트인 속초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제 쪽에서 미시령터널을 막 빠져나왔을 때도, 고기잡이 배가 떠 있는 속초 동명항의 방파제 끝에서도, 리조트들이 몰려 있는 노학동에서도 울산바위의 모습은 뚜렷하다.

울산바위는 보는 자리에 따라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엄청난 크기의 암봉이 뿜어내는 위압의 기운이야 어디서건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올려다보는 지점과 시야에 따라 그 형상과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얘기다. 바위에는 한껏 직각으로 추켜올린 선이 있는가 하면, 날 선 창 끝과 같은 날카로움을 보여 주기도 하고, 단단하게 뭉친 근육의 기운도 품고 있다. 마치 좌대 위에 올려놓은 수석처럼 이쪽에서 보면 이렇게 보이고, 저쪽에서 보면 또 저런 모습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한때 설악의 아이콘으로 흔들바위와 함께 울산바위가 꼽혔던 것은 두 말 할 것 없이 이런 거대한 자태 때문이다. 미시령을 넘어서 마주하게 되는 울산바위의 위용은 누구에게나 감격적이다. 한번도 산에 발을 디뎌 보지 않았던 이라도 울산바위의 장중한 풍경을 올려다보노라면 거기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보게 된다.

바위의 이름이 왜 하필 울산(蔚山)일까. 조물주가 금강산을 지을 때 울산에서 날아온 거대한 바위가 금강산 1만2000봉이 다 채워졌다는 소식에 그만 설악산에 멈춰 서고 말아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란 얘기가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그건 설악산이 관광지로 개발된 이후에 덧대진 이야기란 혐의가 짙다. 조선시대의 기록에서도 울산바위란 이름은 등장하되 그런 유래를 전혀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울산이란 이름을 두고 기이한 봉우리가 울타리를 이루고 있어 ‘울타리산’이란 뜻으로 붙여진 것으로 풀이했다. 이보다 더 그럴듯한 것이 바람이 이 바위에서 스스로 불어오기 때문에 하늘이 운다고 해서 ‘울산’이라 했다는 ‘관동읍지’의 기록. 큰 바람이 장차 불려고 하면 산이 먼저 울기 때문에 ‘울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풀이하는 ‘강원도지’의 기록도 있다. 

지금도 울산바위 아래쪽으로 큰 바람이 지날 때면 바람 소리가 얼마나 세찬지 마치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소리를 연상케 한다. ‘바위가 운다’거나 ‘바람이 이 바위에서 스스로 불어온다’고 믿었던 옛사람들의 얘기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가장 뜨거웠던 물길이 차게 얼어붙다

철원쪽 한탄강 협곡 중에서 가장 웅장한 풍경이 펼쳐지는 송대소 부근의 모습. 혹한의 추위로 두껍게 얼어붙은 한탄강은 수만 년 전 뜨거운 불과 함께 시뻘겋게 끓어오르던 용암이 흘렀던 자취이기도 하다. 얼어붙은 강 위를 걸으면서 이런 까마득한 협곡을 올려다보는 얼음 트레킹은 철원의 매서운 추위가 선사하는 선물이다.


그 며칠 동안 강원 철원은 말 그대로 ‘혹한의 동토(凍土)’였습니다. 

철원 땅의 공식 기온을 재는 지역대표 관측소가 있는 갈말읍이 영하 26.8도. 김화읍의 수은주는 영하 30도까지 떨어진 날이었습니다. 차체 아래쪽에 고드름을 주렁주렁 매단 차들은 여간해선 시동이 걸리지 않았고, 겨우 시동은 건 차들도 짐승처럼 흰 김을 뿜으며 조심조심 얼어붙은 도로를 오갔습니다.

전날 밤까지도 불을 켰던 포장마차는 바퀴가 얼어붙어 꼼짝도 하지 못했고, 추녀에 고드름이 커튼처럼 매달린 가게의 소주병은 얼어 터졌습니다. 큰(漢) 여울(灘)이란 이름의 한탄강이 소리를 다 버리고 적막하게 꽝꽝 얼어붙은 날. 그 단단한 얼음장 위에 올라서 강 위를 걸어봤습니다.



# 가장 뜨거웠던 물길이 차게 얼어붙다

지금은 꽝꽝 얼어붙은 물길이지만, 한탄강은 한때 시뻘건 불길과 함께 끓어 넘치는 용암이 흘렀던 자리였다. 그게 27만 년 전의 일이었다. 서울에서 원산을 잇는 경원선 철로가 북한 땅으로 접어들어서 다섯 번째 역이 견불량역. 여기서 북동쪽 4㎞쯤에서 처음 화산이 폭발했다. 뒤이어 북한 땅인 평강 서남쪽 3㎞ 지점의 오리산에서도 화산이 불을 뿜었다. 백두산과 한라산, 울릉도 성인봉이 일제히 폭발했던 이른바 한반도의 제4계 화산활동의 시기였다.

견불량역 쪽에서 폭발한 화산의 용암은 금세 식어서 굳어버렸지만, 오리산이 뿜어낸 시뻘건 용암이 불바다와 함께 끓어 넘치면서 추가령 계곡을 넘고, 한탄강의 물길 자리를 타고 흘러 임진강 하류까지 무려 90㎞를 달렸다. 화산이 분출한 용암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이때 솟은 용암은 서울의 면적보다 더 넓은 650㎢(1억9600여만 평)의 땅을 뒤덮었다. 용암이 식으면서 한탄강은 막혔지만, 강물은 화산석의 틈새를 가르고 침식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 기기묘묘한 지금의 한탄강 협곡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한탄강의 풍경은 생겨난 이력만큼이나 첫눈에도 독특하다. 한탄강은 철원 평야의 너른 들판 아래 깎아지른 벼랑을 이루며 푹 꺼진 자리에 있다. 그러니 한탄강을 보려면 협곡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평야의 땅 아래 갈라진 계곡 사이로 강물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곡을 이룬 강 아래로 내려설 수 있는 길이 많지 않고, 거친 협곡에다 곳곳에 바위가 있어 배를 띄우기도 쉽지 않으니 한탄강은 주로 ‘내려다보는’ 풍경으로만 익숙하다.

그러나 요즘 같은 혹한에는 사정이 다르다. 얼어붙은 강의 수면 위로 내려설 수 있고, 언 강물 위에 쌓인 눈 위에 발자국을 찍으며 걸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한탄강이 겨울 혹한기에만 잠깐 허락하는 여정. 언 강의 수면 위로 치솟은 주상절리 협곡의 직벽 아래를 걷는 길. 이름 하여 한탄강의 물길을 따라가는 ‘얼음 트레킹’이다.


# 얼음폭포의 근육과 석벽의 뼈대

한탄강 얼음 트레킹 코스는 보통 직탕폭포 아래에서 시작해 송대소를 지나 승일교까지다. 다 걷자면 두어 시간 남짓이 걸리는 짧지 않은 길. 더러는 겨우내 혹한이 몰아쳐도 얼지 않는 승일교 아래쯤에서 발길을 멈추고 다시 고석정에서 시작해 순담계곡까지 발을 딛는 이들도 있지만, 웬만하면 거기까지 가지 않는 게 좋겠다. 

한탄강 수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화강석 기암으로 이뤄진 순담계곡의 절경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급류를 이루는 이쪽은 수면 위에 얼음이 얇아진 곳들이 지뢰처럼 깔려 있다. 그러니 사정에 밝은 현지 주민과 동행하지 않는다면 승일교쯤에서 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게 낫다.

트레킹 코스의 출발지점인 직탕폭포는 곳곳에 거대한 고드름 기둥을 세우고도 그 틈으로 찬물이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내린다. 다른 계절에 직탕폭포 앞에 서본 이들이라면 고작 5m 남짓에 불과한 폭포의 높이에 실망하기 십상이지만, 겨울철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힘찬 물살이 쏟아지면서 얼어붙은 형상이 마치 울끈불끈 근육질의 모양을 닮은 데다, 푸른빛이 감도는 얼음 사이로 쉼 없이 쏟아지는 진청색 물색을 바라보노라면 비장감마저 느껴진다.

직탕폭포 아래서 강에 발을 들여놓았다. 세밑과 신년에 걸쳐 언 강 위에 쏟아진 눈은 아무도 밟지 않은 채 순백으로 빛났다. 인근 주민들은 “강을 덮은 얼음장의 두께가 족히 80㎝는 넘을 것”이라며 “걱정일랑 붙들어 매시라”고 했지만, 막상 한 발 두 발 깊은 강으로 걸음을 들여놓자 가슴이 두방망이질했다. 얼음장 저 아래쯤에서 ‘우지직’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내딛는 발이 급작스레 푹 꺼질 것도 같았다. 가장 공포스러웠던 것은 얼음판 한가운데 채 얼지 않은 몇 개의 ‘숨구멍’에서는 쿨럭쿨럭 푸른 물이 솟아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쌓인 눈 아래 푸르게 빛나는 얼음판을 가로질러서 딱 한 번 강을 건너가 보니 두려움은 금세 달아났다. 아무도 딛지 않은 눈 위에 홀로 발자국을 내면서 얼음장 위에서 미끄럼을 타기도 했고, 강 건너 직벽으로 다가서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형상의 육각형 바위 주상절리를 만져보기도 했다. 거기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강의 한복판에 들어섰을 때, 강 밖에서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는 것이었다.

겨울강, 소리와 티끌을 모두 빨아들이다

눈 쌓인 바위 벼랑을 끼고 돌아가는 적막한 조양강의 강변길. 매서운 한파에도 얼지 않은 강물이 아직 새파랗다. 조양강은 가수리 마을 앞에서 동남천의 물길과 만나서 비로소 동강이 된다.


이제 새해입니다. 신년의 새날이 밝았다 해도 다들 ‘사는 형편’이야 무어 그리 달라지겠습니까만, 시간의 우물에 새로 차가운 새 물이 솟듯이 그래도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마음’은 늘 희망으로 출렁거립니다. LIFE & Style이 신년의 첫 여행지로 한강의 물길을 시원(始原)까지 따라가는 여정을 신년의 첫 여행으로 제안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여정은 남한강 상류, 강원 정선 땅의 동강의 고성리산성 아래 제장마을 쯤에서 시작합니다. 아우라지의 합수머리를 거슬러 올라가고 정선의 조양강을 거쳐 골지천, 그리고 그 끝의 한강발원지 태백의 검룡소까지 올라가는 여정입니다. 이즈음 같은 엄동설한에도 훈김을 내뿜으며 검룡소에서 솟아나는 하루 2000t의 물줄기를 거꾸로 짚어가는 길. 한쪽으로는 눈 쌓인 협곡을, 그 맞은편으로는 아직 얼지 않은 진초록의 물길을 따라갑니다.

세밑에 몰아닥친 매서운 한파에도 동강은 얼지 않았습니다. 꽝꽝 얼어붙었던 남한강이 위쪽의 동강에 이르러서는 시치미를 뚝 뗀 채 찬 물소리와 함께 쉼없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겨울의 날 선 추위는 마치 필터와도 같았습니다. 겨울이 소리를 걸러내면서 눈 쌓인 겨울강은 마치 진공처럼 침묵으로 가득했습니다. 푸른 빛이 감도는 겨울강의 물빛도 겨울이 걸러낸 듯 티끌 하나 없이 ‘거의 완벽하게’ 투명했습니다. 마치 새로 시작하는 첫 마음처럼, 혹은 말갛고 투명한 정신처럼….

적막강산의 고요. 그 길에는 사람도, 차도 드물었습니다. 그 길에서 자주 차를 멈추고 겨울 강의 물빛에 취했지만, 간혹 작고 빨간 오토바이를 탄 우편배달부만 지나갈 뿐 마주쳐 비켜달라는 차 한 대 없었습니다. 이런 적막한 산하에 눈발은 분분하게 흩날렸고, 눈을 이고 있는 강변 마을의 집들에서는 장작을 때는지 굴뚝의 흰 연기과 함께 나무 타는 내음이 옅게 번져나갔습니다. 그 길을 푸른 어둠이 내릴 때까지 저물도록 달려보았습니다.

여정의 종점은 검룡소였습니다. 거기서 한강의 물길은 시작됩니다. 눈 쌓인 숲길을 따라 두 뼘 정도 폭으로 성글게 다져진 눈길을 밟아가며 그 끝에서 겨우내 얼지 않는 맑은 물을 만났습니다. 쉼없이 솟는 검룡소의 물처럼, 이제 길고 긴 물길을 따라 한강에 도달할 희망으로 달려가는 새 물처럼, 바야흐로 이제 새로운 시작입니다.

조양강의 상류인 골지천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강원 삼척과 태백의 깊은 산촌마을을 지난다. 푸른 겨울밤에 가로등이 켜진 외딴 산촌마을의 밤풍경. 차가운 겨울풍경도 등불 하나면 이처럼 따스하다.



# 겨울강, 소리와 티끌을 모두 빨아들이다.

모든 소리를 다 빨아들인 적요한 겨울 강의 정취를 아시는지. 티끌 하나 없이 푸르게 맑은 겨울강의 빛깔을 아시는지. 동해의 푸른 바다 앞에 서거나, 눈꽃 화려한 태백산의 산정에 올라 불끈 돋는 새로운 해를 기다리는 일출여행. 새해의 ‘첫 마음’을 다지는 여행지로 그만한 곳이 없다지만, 경험으로 미뤄보자면 이런 여행은 대개 해돋이의 극적인 감격보다는 오히려 날 선 추위와 거기까지 가는 수고, 그리고 몰려든 인파의 소란스러움 따위로 기억되곤 한다. 

꼭 그래서는 아니다. 기실 시간이란 게 칼로 두부모 자르듯 어제와 오늘이 가려지는 것은 아닌 법. 저문 한 해를 뒤로 하고, 새로 해가 뜬다 해도 그게 어제의 해와 무어 그리 다를까. 어쩌면 시간이란 물처럼 흘러가는 것. 새로 솟는 물이 긴 강을 흘러가듯 그렇게 시간은 구분되지 않고 지나간다. 한 해의 첫머리에 일출 대신 눈발 분분한 날, 거울처럼 맑고 차가운 겨울강을 찾아 첫 물이 솟는 곳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은 그래서였다. 엄동설한에도 쉼 없이 솟아 얼지 않은 채 흘러가는 강물 앞에서, 보내고 또 새로 맞는 시간에 대한 생각은 오히려 더 뚜렷했다. 이따금 생각난 듯 눈발이 지나가고, 강물이 흘러가는 자리에는 다시 끊임없이 솟아나는 새물이 다시 흘러들었다. 어제와 오늘의 구분없이 유장하게 흘러가는 겨울 강 앞에서 첫 마음을 기억하는 일이 어쩌면 더 오래 마음에 새겨질 수 있겠다 싶었다. 

먼저 한강에 대한 건조한 설명. 간선(幹線) 유로연장 481.7㎞. 법정하천연장 405.5㎞. 유역면적 2만 6018㎢. 한강이라면 춘천 쪽으로 이어지는 북한강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한강의 본류는 남한강이다. 남한강 위로는 동강이, 그 위로는 또 조양강이 있다. 조양강을 더 거스르자면 골지천의 물길로 이어지고 종래에는 태백의 검룡소에 닿게 된다. 500㎞에 육박하는 한강의 물길을 다 짚을 수는 없는 일. 겨울 한강의 물길 중에서 가장 빼어나면서도 겨울철에도 접근이 쉬운 구간인 동강 상류 끝자락부터 한강이 발원하는 검룡소까지로 길을 잡는다. 

그 찬란한 풍경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돌아보자면 때로 고단했지만 즐거웠던 여정이었습니다. 문화일보 LIFE & Style이 한 해 동안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했던 여행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다섯 곳을 추려 봤습니다. 깊은 산중의 오지마을과 태풍에 넘어지고만 괴산의 아름드리 왕소나무, 그리고 계절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만났던 남도의 땅…. 때로는 감동으로, 때로는 탄성과 함께 마주했던 곳들입니다. 이 다섯 곳 여행지를 비롯해 올 한 해 LIFE & Style의 여정은 을 통해 다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화전민이 떠나고 난 뒤 청정자연의 원시림이 그대로 남아 있는 늡다리의 칠룡폭포 계곡을 늡다리의 유일한 주민인 김필봉 씨가 내려다보고 있다. 김 씨는 새해가 되면 꼬박 1시간 30분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깊은 오지에서의 산골생활 17년째를 맞는다.



2012년에 문화일보가 찾았던 최고의 여행지는 강원 영월의 ‘늡다리’였다. 화전민이 떠나고 난 뒤 40여 년 동안 사람의 발자취가 끊긴 오지 중의 오지. 늡다리는 강원 영월과 경북 봉화, 충북 단양의 경계에 솟은 어래산과 선달산 북쪽 자락의 계곡에 깊이 숨어 있었다. 맑고 청량한 계곡과 원시림의 짙은 숲. 손대지 않은 자연이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던 곳. 거기에 김필봉(48) 씨의 집이 있었다. 계곡의 물길을 따라 꼬박 1시간 30분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곳. 전기도 없고, 군용 전선으로 위태롭게 놓은 전화선마저도 자주 끊어지는 곳에서 김 씨는 제 먹거리만 거두면서 살고 있었다.

늡다리를 기사로 소개하는 데는 고민이 적지 않았다. 취재 내내 발목을 잡던 생각은 ‘이렇듯 청정한 원시림을 공개했다가 자칫 밀려드는 행락객들로 더럽혀지지 않을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김 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리 자연이 좋다고 해도 여기까지 찾아올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태평스러워했다. 결론은 김 씨의 말이 맞았다. 깊은 오지의 청량한 풍경과 함께 김 씨와 보낸 별이 쏟아지던 하룻밤에 대한 기사가 나간 뒤 독자들의 문의는 쇄도했지만, 정작 늡다리를 찾아간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계곡을 따라 김 씨의 흙집으로 오르는 산길이며 김 씨 집 주변의 원시림은 빼어나게 아름다웠지만, 그 광경을 보려면 바쳐야 하는 1시간 30분 남짓의 산길 걷기를 감내한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였다. 고백하자면 ‘다행스러운 일’이란 생각에 앞서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앞섰다. 행락객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는 것을 바라는 바는 아니었지만, 적막하고 청량한 숲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이제 다시 2012년 최고의 여행지 목록의 맨 앞줄에 늡다리를 꼽는 이유는, 티끌만큼도 훼손되지 않은 빼어난 자연 풍경과 거기에 기대고 사는 김 씨의 삶이 더없이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늡다리가 오래도록 손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김필봉 씨는 지금 푸근하게 눈이 쌓인 늡다리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쌀이 떨어져 계곡 아래 마을로 쌀을 사러 나왔다가 연결된 전화에서 그는 “늡다리에서의 열일곱 번째 겨울을 보내기 위해 땔감을 넉넉히 준비해 두었다”고 했다. 늡다리의 겨울 풍경은 과연 어떨까. 궁금하다면 김 씨에게 전화(033-378-7024)해 보시라.

전북 익산에는 의외로 다양한 풍경과 수많은 이야기를 숨겨둔 명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백제 왕궁 터에 기품 있게 서있는 왕궁리 석탑을 찾아간 날에 마침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전북 익산의 왕궁리 석탑 주변의 화사하게 피어났던 벚꽃. 아쉽게도 그 벚꽃을 다가올 봄에는 보지 못한다. 

지난 여름 잇따라 내습한 두 번의 태풍으로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적잖이 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익산을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던 수많은 명소들이 익산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백제 때의 것인 우람한 왕궁리 석탑이 있고, 한때 한강 이남에서 가장 컸다는 대숲도 있으며, 그윽한 편백나무 숲도 있고, 꽃잔디 화려하게 피어나는 아늑한 한옥의 찻집에다 금강의 유장한 물줄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경치 못지않게 익산에서 감동했던 것은 풍성한 이야기들이었다. 호사가들이 그럴싸하게 꾸며내거나 이리저리 터무니없는 전설 따위를 덧댄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의 한복판을 관통하는 잘 삭은 이야기들이다. 

고대국가 백제의 유적인 미륵사지와 왕궁리 석탑에는 물론이거니와 옛 선비가 부모를 위해 세운 제각인 영모정에도, 난데없는 판소리 공연장을 들여놓은 절집 심곡사에도 이야기들이 펄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나바위성당과 두동교회, 함라의 돌담마을에도 마치 대하소설과 같은 유장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낭산면의 절집 심곡사와 정정렬 명창에 얽힌 이야기였다. 근세 5명창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정정렬. 말년에 명창으로 우뚝 섰지만 사실 그는 음색도 탁하고 성량도 부족했다. 오죽하면 ‘떡이 목에 걸린 것 같은 거친 소리’라 해서 ‘떡목’이라 불렸을까.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평생 심곡사 등의 절집을 떠돌며 피를 토할 정도로 극단의 수련을 했고 수많은 좌절 끝에 끝내 명창으로 거듭났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 승승장구하면서 업적을 이룬 이들도 위대하지만, 이런 삶이 보여주는 감동의 농도는 더 깊고도 짙었다.

동서양이 현해탄 섬들의 군무에 어우러지다-나가사키현 히라도 코스

미야자키현 다카치호 코스에서 만나는 최고 절경인 다카치호 협곡의 미나이 폭포 아래로 유람객들이 보트의 노를 저으며 유유자적하고 있다.


직립보행이 생존을 위한 인류의 숙명이었다 해도 축복이다. 생계를 위한 걷기는 숭고하지만 처연하다. 이에 대한 반발로 ‘살아남기 위한 걷기’를 뛰어넘어 ‘자유로워지기 위한 걷기’ 문화가 생겨났던 건 아닐까. 산책이나 산보 같은 번역어투의 모호함이 아닌 진짜 ‘걷기’는 정면보다는 나를 둘러싼 주변을 살펴보게 해주고, 내 주장보다 타인의 생각을 곱씹게 해준다. 걷기에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것은 바로 ‘길’이다. 본래부터 있던 길은 없다. 길은 사람의 수많은 발자취가 쌓여 만들어진 것. 인간이 만든 모든 길은 오솔길, 산길, 흙길, 돌길, 신작로, 아스팔트길을 차례로 지나며 문명과 자연을 아우른다. 이러한 길들이 이어지며 역사가 만들어졌다. 

1000년이 넘는 동안 프랑스와 스페인 북부를 잇는 750여 ㎞에 이르는 ‘성 야고보의 길’이 그 대표적인 예다. 흔히 ‘순례자의 길’이라 일컬어지는 이 길은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서명숙 제주올레재단 이사장이 자신의 고향 제주에 올레길을 놓는 계기가 됐다. 서 이사장은 성 야고보의 길을 걷는 내내 고향 땅 제주를 떠올렸다고 했다. 이런 사연으로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과 마을 사이에 놓인 올레길은 지난해 무려 100만 명의 도보여행자들을 불러들였다.

‘올레길’의 유례없는 성공 신화는 급기야 일본 규슈(九州)에 수출되기에 이르렀다. 일본 규슈에서 도보코스 조성을 위해 연 100만 엔(1200여만 원)에 ‘올레’의 브랜드를 수입해 간 것이다. 이렇게 제주에서 이름을 빌려간 규슈 올레는 지난해 2월 4개 코스가 조성된 데 이어 1년 만인 지난 16일 또다시 4개 코스가 새로 놓였다. 올레길이 제주에서 바다를 건너 일본 규슈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일본 규슈에 새로 놓인 4개의 올레 코스를 나흘에 걸쳐 느린 걸음으로 돌아봤다.

나가사키현 히라도 코스에 절과 교회가 사이좋게 보이는 돌담길.


◆동서양이 현해탄 섬들의 군무에 어우러지다-나가사키현 히라도 코스

규슈(九州)는 일본을 구성하는 4개의 큰 섬 중 한국과 제일 가까운 곳으로 남한 면적의 절반 크기다. 2012년 규슈를 방문한 외국관광객 100만 명 중 한국인이 65만 명이고 그중 10%는 10회 이상 다시 찾았다고 한다. 선박과 항공 등 접근이 편하고 온천이 좋고 음식이나 숙박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나가사키현 히라도 코스에서 만난 친절한 일본인의 한글 문구가 귀엽다.
하지만 이번에 1120㎞를 이동하며 규슈 제2차 올레길 네 군데를 걸으며 숨겨진 일본의 속살을 만끽할 수 있었다. 역시 시골은 어디나 몸속으로 흘러들어 온다.

규슈 북부의 서쪽 끝에 자리한 히라도(平戶)는 인구 3만5000명의 옛 영화를 간직한 항구도시다. 항구 앞 현해탄을 통해 당·송나라 등 중국, 한국 등과 교역이 이뤄졌고 1500년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서양과의 해외무역항이었으면 아픈 일본 기독교 역사의 흔적이 산재한다. 이러한 히라도의 특징을 담아 올레길은 이어졌다.

항구 어디에서나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 1710년 개축한 히라도성을 바라보며 들어선 골목에는 1500년대 개업한 가게 등 목조 건물들의 생생한 전시장이 이어졌다. 일본 내에서도 근래에 보기 드물어 재조명되는 중이란다. 상가를 빠져나와 809년 창건했다는 사이코지절에 들어서니 그 역사만큼 세월의 두께가 산문을 따라 늘어선 지장보살에 새겨져 있다.

눅눅한 숲길을 벗어나자 외딴집 밖에 “아무쪼 록드셔 주십시오”라는 서툰 한글 아래 사탕 등의 간식거리가 놓여 있었다. 낯모르는 집주인의 배려가 친근했다. 민둥산 같은 해발 200m의 가와치토오게 초원은 정상에서 360도 파노라마 같이 히라도 내해를 볼 수 있다는데 이날은 오락가락한 짙은 안개가 드러내고 숨기를 반복하던 섬들의 군무를 더 아름답게 했다. 희미했던 섬들과의 거리는 바로 아래 마련된 야외 캠핑장에 내려서자 훨씬 가까워졌다. 말 그대로 가슴을 뚫고 섬들이 흔들흔들 춤을 춘다.

한국의 어지간한 야구장보다 시설이 뛰어날 것 같은 아카사카 야구장을 지나자 히라도 기독건축물을 대표하는 민트색 찬란한 자비엘기념교회가 반갑게 맞는다. 기독교 인구가 전국민의 1%도 안 되고 보통 성당의 교인이 수십 명에 불과할 정도로 미약한 교세지만 교회게시판에 붙은 불우이웃돕기 행사가 신앙의 깊이를 가늠케 했다. 에도(江戶) 막부시대 금교령으로 히라도에 숨어 있다 화형 당한 순교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며 들어선 돌담길은 천주교당의 뾰족탑과 쇼주지절을 고즈넉하게 품어 안아준다. 흰 매화가 수줍게 고개를 내민 사찰 경내를 지나면 자연히 히라도항과 마을들이 사정없이 두 눈을 호사하게 한다.

수령 400년의 큰 소철나무가 있는 주택가를 지나 소박한 기념품 상점가를 지나면 포경항으로 유명했던 곳답게 고래고기 전문점을 만날 수 있다. 고로케와 햄버거에서 특유의 풍미가 느껴진다. 특산품인 아고라고 불리는 말린 날치를 둘러보던 제주에서 온 중년의 올레꾼은 제주와는 다른 의미에서 만족스러운 올레였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