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ly 12, 2014

연화도에서 처음과 끝을 묻다

연화도의 등뼈를 짚으며 걷는 트레킹 코스의 끝 부분에서 만난 풍경. 바닷가에 치솟은 바위들이 얼마나 거대하고 압도적인지는 왼쪽 바위 끝에 선 사람의 크기와 비교해 보면 짐작되고도 남는다. 뒤쪽으로 늘어선 거대한 바위들이 연화도의 최대 절경이라는 ‘용머리’를 이룬다.


‘대양을 향해 자맥질하는 용의 등에 턱 하고 올라선 듯한 느낌’. 아무래도 이보다 더 걸맞은 표현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경남 통영항 남쪽의 섬 연화도. 그 섬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본 풍경을 설명하자면 그렇습니다. 섬이 몸을 뒤튼 끝자락으로 힘차게 바다 위로 솟구친 바위가 끊어질 듯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우람한 바위들이 꼬리처럼 길게 이어진 모습이 마치 바다에 잠긴 용의 드러난 등과도 같았던 것이지요. 수반에 올려놓으면 그대로 최고의 명품 수석이 될 것 같은 경관. 그 풍경은 거대했고, 또 묵직했습니다. 

사실 통영항에서 다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섬을 소개한다는 건 적잖이 망설여지는 일입니다. 통영까지만 해도 먼 길인데다 부근만 돌아본대도 명소들이 즐비하니 그런 걸 다 놔두고 굳이 더 먼 섬까지 가야 하는 이유를 꺼내서 보여주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연화도라면 가능합니다. 섬의 풍경부터 거기 깃든 이야기까지, 그곳에 가야 할 이유를 얼마든지 댈 수 있으니까요. 통영까지 가서 다른 볼거리를 다 놓친다 해도 좋습니다. 연화도만 보고 온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연화도에서 기막힌 해안 풍경과 함께 만나야 할 것은 섬이 품은 향기입니다. 연화(蓮花). 연꽃이란 섬 이름에서 이미 눈치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연화도에는 조선시대 지배세력의 수탈과 탄압에 시달리다 섬까지 쫓겨 들어온 가난한 이들의 간절한 기원과 수행자들의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게 어디 연화도뿐일까요. 인근 통영 바다의 욕지도, 두미도, 세존도에도 이상향에 대한 기원과 불국토에 대한 꿈이 잠겨있습니다. 하나하나 섬의 이름부터가 종교적 상징으로 읽히는 건 그 때문입니다. 

통영 바다 위에 꽃잎처럼, 혹은 징검다리처럼 떠있는 수많은 섬 중의 하나인 연화도에는 그 오래된 꿈이 절집으로, 암자로, 석불로, 또 석탑으로 서 있습니다. 절해고도에 암자를 지어 수도하던 이가 죽어 바다 위로 던져져 연꽃으로 피어났고, 그 뒤로 고승의 자취가 겹쳐지면서 가파른 해안 벼랑에 암자가 지어졌고, 섬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아미타불이, 암자 앞에 해수관음상이, 그 곁에 오층석탑이 들어섰습니다. 이로써 연화도는 빼어난 풍경에다 수백 년 전 꿈과 기원의 그윽한 향기까지 얻게 된 것이지요. 

아 참, 연화도에 가게 된다면 꼭 가져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건 다름아닌 ‘넉넉한 시간’입니다. 연화도는 바삐 걷자면 서너 시간쯤이면 걸어서 다 돌아볼 정도의 크기지만, 봄의 기운으로 가득한 그 멋진 섬을 그저 발끝만 보고 걷는대서야 안 될 노릇이니까요. 바다를 마주한 암자 마당에서 얕은 기왓담 너머의 바다를 오래 바라보고, 죽순처럼 치솟은 바위 벼랑 사이를 느린 걸음으로 지나고, 전교생이 6명뿐인 섬마을의 작은 분교의 운동장도 차근차근 둘러보자면 하루 일정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답니다. 느릿느릿 가는 섬의 시간에 맞춰 연화도에 머문다면 몸이 아닌 ‘마음을 쉰다’는 게 과연 어떤 기분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섬으로 떠나는 여정은 늘 뱃전에서의 설렘으로 시작한다. 이즈음 연화도로 향하는 카페리 욕지아일랜드호의 갑판에서는 햇볕이 부서지는 봄바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봄은 뭍에서도 그렇지만, 바다에서도 눈이 부시게 다가온다.




# 연화도에서 처음과 끝을 묻다 

경남 통영의 연화도(蓮花島). 그 섬에 건너가려거든 먼저 통영 앞바다에 떠있는 섬에 얽혀있는 옛 문장 하나 읽고 가는 게 순서겠다. 통영 바다의 지도를 펴놓고 보면 더 좋겠고, 지도가 없다면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연화도행 배를 기다리며 한쪽 벽에 걸린 항로표지를 읽어봐도 좋다. ‘욕지(欲知) 두미(頭尾)하거든 문어(問於) 세존(世尊)하라.’

한자로 된 말을 풀어보면 뜻이 이렇다. “처음과 끝을 알고자 하거든 세존께 물어보라.” 선문답 같은 이 글에 등장하는 한자어가 모두 통영 근해의 섬이나 포구의 이름이다. ‘욕지’와 ‘두미’ ‘세존’은 통영 앞바다의 섬 이름이고, ‘문어’ 역시 통영 앞바다의 섬 한산도의 포구 이름이다. 호수처럼 고요한 바다 위 징검다리 같은 포구와 섬 이름을 이어붙이니 불가의 선문답같기도 하고, 한편의 시같기도 한 문장이 완성된다. 문장이 먼저일까, 섬의 이름이 먼저일까. 아무런들 어떠랴. 통영의 바다가 종교적 사색을 일깨우는 한 줄의 문장으로 ‘장엄(莊嚴·불교적 의미의 장식)’돼 있는 셈이다. 

그 장엄의 바다 가운데 섬 연화도가 있다. ‘연화(蓮花)’라면 곧 연꽃이다. 그 이름에서 불교적 이상향을 의미하는 ‘연화장(蓮花藏) 세계’를 떠올리는 건 당연한 순서다. ‘처음과 끝을 알려면 세존께 물으라’ 가르치는 통영의 앞바다에 답변처럼 이상향의 불국토 연화도가 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불가의 바다에 떠있는 연꽃 한 송이. 그게 그저 이름뿐만이 아니다. 연화도의 이야기들은 모두 불교와 만난다. 섬에는 평생 불법을 닦았다는 신비의 도인(道人)의 흔적과 불법 높은 고승의 자취도 있으며, 윤회의 신비스러운 바퀴도 구르고 있다. 

연화도를 읽는 ‘키워드’는 불교이지만, 불법에 문외한이라거나 아예 다른 종교를 갖고 있다 해도 전혀 상관없다. 부처든, 예수든 그걸 만든 게 누군지는 모른다 해도 섬의 곳곳에서 만나는 압도적인 풍광 앞에서는 절로 무릎을 꿇게 되니 말이다. 대체 누가 바다 위에 이런 비경을 빚었을까. 섬의 풍경만 보려 연화도로 건너간다고 해도 밑지는 셈속이 아니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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