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ly 12, 2014

겨울강, 소리와 티끌을 모두 빨아들이다

눈 쌓인 바위 벼랑을 끼고 돌아가는 적막한 조양강의 강변길. 매서운 한파에도 얼지 않은 강물이 아직 새파랗다. 조양강은 가수리 마을 앞에서 동남천의 물길과 만나서 비로소 동강이 된다.


이제 새해입니다. 신년의 새날이 밝았다 해도 다들 ‘사는 형편’이야 무어 그리 달라지겠습니까만, 시간의 우물에 새로 차가운 새 물이 솟듯이 그래도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마음’은 늘 희망으로 출렁거립니다. LIFE & Style이 신년의 첫 여행지로 한강의 물길을 시원(始原)까지 따라가는 여정을 신년의 첫 여행으로 제안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여정은 남한강 상류, 강원 정선 땅의 동강의 고성리산성 아래 제장마을 쯤에서 시작합니다. 아우라지의 합수머리를 거슬러 올라가고 정선의 조양강을 거쳐 골지천, 그리고 그 끝의 한강발원지 태백의 검룡소까지 올라가는 여정입니다. 이즈음 같은 엄동설한에도 훈김을 내뿜으며 검룡소에서 솟아나는 하루 2000t의 물줄기를 거꾸로 짚어가는 길. 한쪽으로는 눈 쌓인 협곡을, 그 맞은편으로는 아직 얼지 않은 진초록의 물길을 따라갑니다.

세밑에 몰아닥친 매서운 한파에도 동강은 얼지 않았습니다. 꽝꽝 얼어붙었던 남한강이 위쪽의 동강에 이르러서는 시치미를 뚝 뗀 채 찬 물소리와 함께 쉼없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겨울의 날 선 추위는 마치 필터와도 같았습니다. 겨울이 소리를 걸러내면서 눈 쌓인 겨울강은 마치 진공처럼 침묵으로 가득했습니다. 푸른 빛이 감도는 겨울강의 물빛도 겨울이 걸러낸 듯 티끌 하나 없이 ‘거의 완벽하게’ 투명했습니다. 마치 새로 시작하는 첫 마음처럼, 혹은 말갛고 투명한 정신처럼….

적막강산의 고요. 그 길에는 사람도, 차도 드물었습니다. 그 길에서 자주 차를 멈추고 겨울 강의 물빛에 취했지만, 간혹 작고 빨간 오토바이를 탄 우편배달부만 지나갈 뿐 마주쳐 비켜달라는 차 한 대 없었습니다. 이런 적막한 산하에 눈발은 분분하게 흩날렸고, 눈을 이고 있는 강변 마을의 집들에서는 장작을 때는지 굴뚝의 흰 연기과 함께 나무 타는 내음이 옅게 번져나갔습니다. 그 길을 푸른 어둠이 내릴 때까지 저물도록 달려보았습니다.

여정의 종점은 검룡소였습니다. 거기서 한강의 물길은 시작됩니다. 눈 쌓인 숲길을 따라 두 뼘 정도 폭으로 성글게 다져진 눈길을 밟아가며 그 끝에서 겨우내 얼지 않는 맑은 물을 만났습니다. 쉼없이 솟는 검룡소의 물처럼, 이제 길고 긴 물길을 따라 한강에 도달할 희망으로 달려가는 새 물처럼, 바야흐로 이제 새로운 시작입니다.

조양강의 상류인 골지천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강원 삼척과 태백의 깊은 산촌마을을 지난다. 푸른 겨울밤에 가로등이 켜진 외딴 산촌마을의 밤풍경. 차가운 겨울풍경도 등불 하나면 이처럼 따스하다.



# 겨울강, 소리와 티끌을 모두 빨아들이다.

모든 소리를 다 빨아들인 적요한 겨울 강의 정취를 아시는지. 티끌 하나 없이 푸르게 맑은 겨울강의 빛깔을 아시는지. 동해의 푸른 바다 앞에 서거나, 눈꽃 화려한 태백산의 산정에 올라 불끈 돋는 새로운 해를 기다리는 일출여행. 새해의 ‘첫 마음’을 다지는 여행지로 그만한 곳이 없다지만, 경험으로 미뤄보자면 이런 여행은 대개 해돋이의 극적인 감격보다는 오히려 날 선 추위와 거기까지 가는 수고, 그리고 몰려든 인파의 소란스러움 따위로 기억되곤 한다. 

꼭 그래서는 아니다. 기실 시간이란 게 칼로 두부모 자르듯 어제와 오늘이 가려지는 것은 아닌 법. 저문 한 해를 뒤로 하고, 새로 해가 뜬다 해도 그게 어제의 해와 무어 그리 다를까. 어쩌면 시간이란 물처럼 흘러가는 것. 새로 솟는 물이 긴 강을 흘러가듯 그렇게 시간은 구분되지 않고 지나간다. 한 해의 첫머리에 일출 대신 눈발 분분한 날, 거울처럼 맑고 차가운 겨울강을 찾아 첫 물이 솟는 곳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은 그래서였다. 엄동설한에도 쉼 없이 솟아 얼지 않은 채 흘러가는 강물 앞에서, 보내고 또 새로 맞는 시간에 대한 생각은 오히려 더 뚜렷했다. 이따금 생각난 듯 눈발이 지나가고, 강물이 흘러가는 자리에는 다시 끊임없이 솟아나는 새물이 다시 흘러들었다. 어제와 오늘의 구분없이 유장하게 흘러가는 겨울 강 앞에서 첫 마음을 기억하는 일이 어쩌면 더 오래 마음에 새겨질 수 있겠다 싶었다. 

먼저 한강에 대한 건조한 설명. 간선(幹線) 유로연장 481.7㎞. 법정하천연장 405.5㎞. 유역면적 2만 6018㎢. 한강이라면 춘천 쪽으로 이어지는 북한강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한강의 본류는 남한강이다. 남한강 위로는 동강이, 그 위로는 또 조양강이 있다. 조양강을 더 거스르자면 골지천의 물길로 이어지고 종래에는 태백의 검룡소에 닿게 된다. 500㎞에 육박하는 한강의 물길을 다 짚을 수는 없는 일. 겨울 한강의 물길 중에서 가장 빼어나면서도 겨울철에도 접근이 쉬운 구간인 동강 상류 끝자락부터 한강이 발원하는 검룡소까지로 길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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