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ly 12, 2014

백매화 한 송이가 봄의 기운을 알리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의 노리매공원에 피어난 백매화. 순백의 꽃잎에 꽃받침의 붉은 기운이 은은하게 감돈다. 앞서 제주 한림공원의 매화는 진작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노리매공원을 거쳐 서귀포의 매화나무에도 꽃들이 팝콘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겨울의 끝이 머지않았다.


‘봄의 경보’를 발령합니다. 매복해 있던 봄의 척후병들이 지난주부터 제주에서 막 기동을 시작했습니다. 뒤이어 당도할 본진 병력의 진주에 앞서 정찰을 위해 제주 땅에 상륙한 것이지요. 시작은 서귀포시 한림읍의 한림공원이었습니다. 수선화 동산 양지바른 쪽 매화나무 가지에 백매화 한 송이가 톡 하고 꽃망울을 터뜨린 게 첫 신호였습니다. 뒤를 이은 것은 대정읍 구억리 노리매공원의 매화나무입니다. 가지치기한 나무등걸에 새로 돋은 가지마다 순백의 매화가 다닥다닥 매달렸습니다. 그뒤부터는 아주 걷잡을 수 없습니다.

서귀포의 칠십리시공원 매화동산의 꽃들이 온통 수런거리기 시작했고, 문섬과 섶섬이 바라다보이는 언덕 위의 홍매화 나무는 선혈처럼 붉은 꽃을 피우고는 벌써 꽃잎을 하나 둘 떨구고 있었습니다. 어디 매화뿐이겠습니까. 산방산이 바라다보이는 대정읍의 들에는 진즉부터 수선화가 꽃을 피워냈으며 발밑으로는 봄까치꽃, 광대나물, 별꽃 같은 야생화들이 앞다퉈 아우성 치며 꽃으로 터지고 있었습니다.

봄의 기운은 바다에도 당도해 있었습니다. 유채꽃 일렁이는 해안가 너머 갯바위에는 진초록의 해초들이 융단처럼 깔리기 시작했고, 봄내음에 취한 왜가리들이 갯바위를 딛고서 한껏 게으른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육지는 잇단 폭설과 날선 추위로 봄은 아직 언감생심이지만, 바다 건너 제주에는 입춘을 건너가면서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올리듯 봄의 기운이 번져가고 있는 것이지요.

봄꽃이 앞다퉈 피어나듯 이즈음 제주에는 마을미술사업이 봇물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갤러리와 미술관의 권위 안에 갇혔던 미술이 담을 뛰어넘어 일상으로 넘어와 꽃처럼 환하게 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제주에는 또 이중섭미술관과 기당미술관을 비롯해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등의 내로라하는 미술관이 있습니다. 화사한 봄꽃만으로는 제주까지 간 보람에 값하기 부족하다 싶으면 미술을 일상의 공간으로 가져온 서귀포 일대의 풍경 속을 거닐어본다면 어떻겠습니까.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 용왕난드르마을 해안에 왜가리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본디 여름 철새지만 남쪽지방에서는 텃새가 돼 버린 왜가리가 모처럼의 따스한 봄볕 아래서 먹이사냥을 하고 있다. 제주바다에 번져가는 봄의 기운에서는 평화로움이 읽힌다.




# 백매화 한 송이가 봄의 기운을 알리다

올들어 첫 매화 소식은 제주 섬 서쪽 한림공원에서 시작됐다. 재암수석관 뒤쪽 수선화 정원의 매화나무 가지 끝에 톡 하고 백매화가 터졌다. 봄이 머지않았음을 알리는 올해 첫 매화였다. 그게 벌써 열흘도 더 전의 일이라고 했다. 해마다 공원에서 가장 이른 꽃을 피워내 ‘설중매(雪中梅)’로 이름붙여진 홍매화가 미처 꽃몽우리를 맺기도 전이었다.

첫 꽃에 이어 ‘남고(南古)’라 이름붙은 백매화 나무가 순식간에 타다닥 꽃을 피워냈고, 홍매 ‘홍천조’가 뒤질세라 선혈처럼 진한 붉은 꽃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흘여 만에 가지가 척척 늘어진 70년 묵은 수양백매에까지 꽃이 옮겨 붙었다. 따스한 햇살이 며칠만 더 허락되면 흰 꽃과 붉은 꽃이 한 나무의 가지에서 피어 제주 매화의 명물로 꼽히는 ‘백홍매’에도 희고 붉은 꽃이 피어나리라.

한림공원의 매화 소식은 이제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의 노리매공원으로 건너갔다. ‘노리매’란 ‘놀이’란 우리말에다 매화의 ‘매(梅)’자를 더해 만든 이름. 공원 주인이 20년 넘게 정성으로 길러낸 매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흐드러진 매화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고작 20일 남짓이라, 남은 345일을 위해 동백나무를 비롯한 갖은 꽃나무를 더 많이 심어두긴 했지만 노리매공원의 주인은 누가 뭐라 해도 매화다. 

이쯤에서 살짝 귀띔 한마디. 노리매공원을 찾아간다면 그림보기를 청해보자. 본관 건물 2층에는 제주 출신의 화가 강요배의 매화 그림 한 점이 걸려있다. 화가가 매화를 좋아하는 주인에게 그려준 것이라는데, 여위었으되 힘차게 둥치를 뒤튼 늙은 매화나무 그림의 여운이 깊고도 짙다. 관람객들에게 내보이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그윽한 매화향을 즐긴 뒤 정중하게 그림보기를 청한다면 마다하지는 않을 듯 싶다.

서귀포에 피란 와서 살던 이중섭의 옛집 인근 자구리 해안에 설치된 조형물. 60여년 전 이중섭이 서귀포를 배경으로 그린 ‘게와 아이들’을 그리는 손을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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