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ly 12, 2014

제주에서 건축과 미술을 찾아가야 하는 이유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한라산 중산간에 지어져 지난해 11월 개관한 ‘본태박물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연못. 안도 다다오는 바다 쪽으로 열려 있는 건축물 앞쪽 공간에 연못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제주의 하늘을 담아냈다. 현무암으로 이뤄진 화산섬인 제주에서는 호수나 연못을 찾아보기 어려우니 이런 광경은, 말하자면 ‘제주에는 없는 풍경’이다. 건축으로 빚어낸 새로운 미감인 셈이다.


혹시 아시는지요.

제주의 자연 속에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이 지은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이 하나씩 들어서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마리오 보타, 이타미 준(伊丹潤), 리카르도 레고레타…. 그 이름만으로도 흥분되는 건축계의 세계적인 거장들입니다. 

그들이 제주의 자연 속에 빚어낸 공간을 찾아나섰습니다. 대가들의 건축물 앞에서 봐야 할 것은 건물이 그려내는 선과 면, 공간적 균형만이 아니더군요. 제주의 빛과 바람, 그리고 풍경을 공간 내부로 끌고 들어온 건축물 앞에 비로소 알아챘습니다.

건축이 때로는 제주의 자연을 더 극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 ‘액자’의 기능을 한다는 걸 말입니다. 거기서 제주의 빛과 바람과 풍경을 보는 방법을 한 수 배울 수도 있지 싶었습니다.

제주의 빼어난 자연경관에 세계적인 거장들의 건축물들이 하나 둘 세워지면서, 제주는 더 아름다워지고 있는 중입니다.

바다 건너로 성산일출봉이 바라다보이는 섭지코지 끝에 들어선 안도 다다오의 ‘글라스 하우스’. 감각적이면서 기하학적인 외관이 인상적이지만, 성산일출봉의 경관을 가리는 데다 건축물의 선이 단단해서 ‘신경질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 제주에서 건축과 미술을 찾아가야 하는 이유

제주에서 건축물을 찾아나서자는 제안은 다소 낯설 수도 있겠다. 빼어난 자연경관을 주변에 두고서 사방이 벽인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인공적인 건축물들을 찾아다닌다는 게 갑갑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하지만 제주의 건축을 만난다는 것은 제주의 빛과 바람을 시멘트 구조물에 오롯이 담아낸 작품을 만난다는 의미. 이런 여정을 통해 제주의 자연을 더 아름답게 볼 줄 아는 시선을 배울 수 있다. 제주의 자연경관에 건축 구조물을 액자 삼아 풍경을 들여놓은 건축가의 조형적인 건축물 앞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제주의 자연을 만날 수 있다는 얘기다. 제주에서 건축에 주목하는 이유는 최근 잇따라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건축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안도 다다오, 이타미 준, 마리오 보타, 리카르도 레고레타….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뛰게 하는 세계적인 대가들의 건축물이 제주 곳곳에 들어서 있다. 

제주에서의 건축 기행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상상 하나. 먼저 자신이 건축가라고 생각해보자. 제주의 눈 덮인 한라산 영봉이 정면으로 보이는 최고의 자리에 건축물을 지어야 한다는 과제가 떨어졌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눈부시게 펼쳐지는 협재해수욕장의 언덕쯤이라도 좋겠다. 건물 자체의 미감은 물론이거니와 완성된 건축물의 프레임을 통해 내다보이는 시선까지 고려해야 한다. 적절한 메시지와 울림도 담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건물이 주변 경관을 다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얼마나 고민스러울 것인가.

이쯤이면 제주라는 빼어난 자연 공간 속에 인공 건물을 들여넣는 건축가들의 고민이 익히 짐작되지 않는가. 제주에서 당대 최고의 건축 대가가 세운 건축물을 찾아나서는 것은, 바로 그들이 제주의 자연 속에서 어떤 고민을 했고 또 어떤 해답을 찾았는가를 찾아가는 여정과 다름없다.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세운 유리피라미드 형태의 ‘아고라’. 낮에는 태양의 기운을, 밤에는 별빛을 올려다볼 수 있는 공간이다.


# ‘제주의 빛’이 빚어낸 건축물의 아름다움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제주에 건축물을 세우면서 지향한 것은 ‘자연과의 조화’ 혹은 ‘휴식과 명상’이다. 그 이유는 한 가지. 그곳이 ‘제주’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품은 힐링의 공간. 건축가들은 제주를 이렇게 해독했다. 제주의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물은 효율과 쓸모만으로 독해되지 않는다. 시각적인 형태의 미감으로만 읽히는 것도 아니다. 자연경관은 말할 것도 없고 건축물에 드리운 빛과 그늘까지 건축의 일부분이 되고, 건물이 유도해내는 바람마저도 형태를 갖게 된다.

여기다가 건물 안팎의 동선과 시선마저도 철저한 계산을 통해 의도돼 공간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더러는 제주의 자연 속에서 빛과 바람을 차용했고, 또 다른 건축가는 오름의 부드러운 곡선을 빌려 건물을 지어냈다. 파스텔 톤의 푸른 하늘과 청록빛 투명한 바다를 건물 액자 속에 가두는가 하면 화산석으로 이뤄진 제주에서는 보기 드문 호수를 한라산 중산간지역에 만들어놓고 제주의 하늘을 그 안에 담기도 했다. 건축을 통해 동선과 시선을 이끌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시점을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자연의 풍경’을 구성해내고 있는 것이다. 

건축기행의 첫 목적지는 서귀포시 중문의 ‘까사 델 아구아’. 이곳을 택한 것은 그 건물이 곧 철거될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까사 델 아구아’는 스페인어로 ‘물의 집’이라는 뜻. 지난 2011년 타계한 멕시코의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유작이다. 건축물은 곧은 직선만으로 이뤄졌음에도 제주의 흙과 바다의 색감, 그리고 빛을 담아내 화려하다. 건물의 외벽은 제주의 흙빛이자 멕시코 특유의 색감을 연상케 하는 붉은색이고, 내부는 화려한 파스텔 톤의 색조들이다. 건물 안쪽의 현란한 색채감을 압도하는 주연은 단연 빛이다. 건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계산해 볕의 기울기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공간의 질감과 색조가 달라지는 모습이 압권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빼어난 건축물이 철거를 목전에 두고 있다. 까사 델 아구아는 애초에 대규모 호텔 건설에 앞서 모델하우스 겸 갤러리로 지은 건물. 그런데 호텔이 완공되면서 임시건축물로 허가받은 모델하우스는 존폐논란에 휩싸였다. 제주도 측은 까사 델 아구아가 한시적 허가기간이 지난 불법건축물이니 만큼 헐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문화예술인들은 세계적인 건축가의 빼어난 유작의 철거에 반대하고 있다. 호텔이 애초의 설계에서 상당부분 변경된 상황에서 설계 그대로 지어진 모델하우스만큼은 ‘작품’으로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다. 문화예술인들은 연일 시위를 벌이면서 건축물 주변의 나뭇가지에다 철거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적은 노란 리본을 매달고 있다. 양쪽의 주장은 평행선을 긋고 있지만, 그곳을 한번이라도 들여다봤다면 망설임 없이 ‘존치’ 쪽의 손을 들어주게 되리라. 

성이시돌목장의 테쉬폰. 독특한 외양에 세월의 더께가 입혀져 예술작품을 방불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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