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ly 12, 2014

가을 대청호를 가장 아름답게 굽어보는 자리

‘내륙의 한려수도’라는 대청호를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자리. 그게 여기 충북 청원의 구룡산 삿갓봉 정상이다. 삿갓봉 정상에는 나무로 깎은 용 한 마리가 머리를 내밀고 있는데, 그 뒤로 만수위를 이룬 대청호의 물줄기가 펼쳐진다.


만수(滿水). 가을 대청호에 물이 가득 찼습니다. 찰랑거리는 호반에 하루하루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이면 차가워진 가을 호수의 수면 위로 어김없이 물안개가 피어올랐습니다.
물안개 속에서 물에 잠긴 버드나무들이 머리를 헝클고 서 있고,
이따금 생각난 듯 고요한 수면 위로 물오리떼가 날아올랐습니다. 일찍 깨어나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고 물가로
들어가 이런 풍경 앞에 섰습니다. 호수의 수면에는 작은 물살 하나 그려지지 않아 마치 정물과도 같았고,
대기는 촉촉했습니다. 문득 어디선가 첼로의 선율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거기서 눈치챘습니다. 대청호는 지금 한 해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건너가고 있는 중이라는 걸 말입니다.



# 가을 대청호를 가장 아름답게 굽어보는 자리

충북 청원이 아름다운 것은 대청호가 있기 때문이고, 대청호가 올가을에 유독 아름다운 것은 물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가을의 호수가 만수위를 이루는 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저수지며 댐은 늦여름이면 집중 호우에 대비하느라 물을 뺀다. 그래서 해마다 이즈음이면 저수지며 댐은 물이 빠져 만수위를 이뤘던 자리를 마치 화물선의 흘수선처럼 거칠게 드러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지금 대청호는 호안(湖岸)에 줄지어 서 있는 나무의 밑동까지 물이 가득 차 찰랑거리고 있다. 아마도 늦여름에 연거푸 내습해 많은 비를 뿌리고 간 두 번의 태풍 때문이리라.

가을빛으로 물들어 출렁이는 대청호를 찾아 나선 길. 대청호를 내려다보는 가장 아름다운 전망대가 그곳에 있다고 했다. 충북 청원의 구룡산(九龍山·373m). 아홉 마리 용이 모여 있는 산세라고 아홉(九) 용(龍)의 이름을 가진 산이다. 구룡산은 대청호에 딱 붙어서 솟아 있어 최고의 전망을 자랑한다. 산은 절집 현암사가 있는 호반의 벼랑 쪽으로도, 반대편의 진장골 장승공원 쪽으로도 오를 수 있다. 원점으로 회귀하는 산행이라면 현암사 쪽에서 오르는 편이 더 낫겠다.

# 현암사를 타고 넘어 구룡산 삿갓봉까지

청남대의 산책로 ‘노태우 대통령길’ 초입의 음악분수 주변의 메타세쿼이아 산책로. 아직 푸른빛이 청청하다.
현암사 아래 호안도로의 주차장에서 구룡산 삿갓봉 정상까지는 1시간 남짓이면 족하다. 굳이 등산이랄 것도 없어, 운동화 차림으로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순한 산길이다. 먼저 제법 가파르게 놓인 철제계단을 올라 빗질 자국 정갈한 마당을 가진 현암사부터 딛는다. 가파른 절벽에 위태롭게 앉은 절집 현암사는 전망이 압권이다. 현암사 마당에서는 대통령 별장이었던 청남대가 대청호 건너편에 정면으로 보인다. 현암사가 장쾌한 경관을 지니고 있다는 건 한때 절집에 정부 기관원들이 상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사연인즉 이렇다. 청남대가 대통령 별장으로 쓰이던 시절, 정부 부처에서 절집 철거 압력이 끊이질 않았단다. 그러나 스님들은 ‘좋은 자리로 이전해주겠다’는 제의를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자 대통령이 청남대에 내려올 무렵이면 기관원과 형사 8명이 현암사에 올라와 아예 상주하면서 신도들을 감시하기도 했단다.

현암사까지만 해도 만족할 만한 풍경이지만 내처 삿갓봉까지 오르면 그야말로 ‘일망무제’의 호수 풍경을 볼 수 있다. 삿갓봉 위에 서면 대청호와 호수를 둘러싼 산자락들이 모두 발아래다. 해발 400m에도 못 미치는 높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시야가 장쾌하다. 대청호에 왜 ‘내륙의 다도해’란 별명이 붙었는지 금세 이해가 된다. 물이 그득한 대청호를 구불구불 들고나는 호반이 마치 서남해의 리아스식 해안처럼 펼쳐진다. 이제 막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하는 지금의 풍경도 이럴진대, 울긋불긋 단풍이 호수까지 내려온다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저릿저릿해진다.

삿갓봉 정상에는 통나무로 잘 깎은 흑룡이 한 마리 있다. 꼬리부분을 돌로 돋워놓은 땅에 묻고 있어 마치 산 정상의 땅에서 솟아 승천하려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산정(山頂)의 용이 대청호의 물길을 허리 아랫부분으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수많은 물의 꼬리를 가진 용 한 마리. 그 용이 화창한 가을 햇살 속에서 서늘한 바람이 지나는 구룡산에 있다.

# 물길을 따라 수몰나무를 끼고 걷다 

구룡산의 현암사 아래쪽에는 대청댐이 있다. 댐 아래로 흘러내린 물은 청원 땅과 대전 땅을 가르며 금강에 합류한다. 물 이쪽이 청원이고 건너편이 대전이다. 지도 위의 행정구역은 선명하게 단절돼 있지만, 실제의 경계는 희미하다. 대청댐 아래 물길을 가로질러 놓은 짧은 다리 하나만 건너면 바로 대전이니 말이다.

예까지 와서 ‘전국 최고의 수변산책로’로 꼽히는 대전의 ‘로하스 해피로드’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영문으로 붙여진 길 이름이 못내 못마땅하긴 하지만, 대청공원에서 호반가든까지 이어지는 1.5㎞ 남짓의 수변 덱은 떨어진 낙엽들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려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길이다. 덱이 지나가는 물가에는 무릎까지 물에 잠긴 수몰 버드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수몰나무의 실루엣이 수면에 반영돼 데칼코마니처럼 찍히는 모습은 ‘황홀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런 풍경 위로 순백의 왜가리와 백로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르고 오리떼 일가족은 물 위에 동심원을 그리면서 내려앉더니 점잖게 미끄러진다.

이 길을 걷는 것이 어찌나 낭만적인지 아무리 무뚝뚝한 사람일지라도, 그 길에 데려다 놓는다면 금세 가을의 색감에 젖어 마음이 촉촉해질 게 틀림없겠다 싶다. 수변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 나무로 세운 정자와 벤치가 있고, 안쪽에는 너른 잔디밭도 펼쳐져 있다. 강이 바라다보이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혹은 잔디밭 위에 돗자리를 펴고 둥글게 모여 앉아서 가을 소풍을 즐긴다면 이 짧은 가을을 보내는 데는 더할 나위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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