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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은 섬을 한 바퀴 도는 화살표를 따라 분명한 코스가 나있지만, 그 길을 벗어나 제주 여행에서의 ‘걷기’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그래서 이즈음 제주에서는 올레길을 벗어난 곳에서도 걷기 여행자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사진은 해질 무렵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능선을 걷는 도보 여행자의 모습. |
2007년 9월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에서 출발한 제주 올레길이 이 달말쯤 제주 섬을 한 바퀴 다 돌아 5년 만에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당도해 마침표를 찍습니다. 시흥리와 종달리라니 시작과 끝의 마을 이름이 의미심장합니다. 올레길이 출발하는 시흥리는 시작을 의미하는‘비로소 시(始)’ 자를 쓰고, 섬을 다 돌고 도착하는 종달리는 ‘끝 종(終)’ 자를 쓰니 말입니다.해안과 중산간, 마을의 흐려진 길을 한데 붙여 이어낸 올레길은 참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습니다.
먼저 그 길은 ‘걷는다’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를 가르쳐 주었고, ‘걷는 일’이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목적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멀미 나는 속도로 살아온 도시 사람들이 그 길 위에서 만난 것은 아름다운 경관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위안과 치유를 만났습니다.
가끔은 속도를 줄이고 멈춰 서서 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그 길 위에서 였습니다. 무릇 여행이라면 그곳의 사람들과 따스하게 교유해야 한다는 것도 그 길에서 배웠습니다.여행의 방법부터 삶의 방식까지…. 올레길이 우리들에게 축복처럼 선사한 것은 너무도 많습니다.
완전 개통을 앞두고 올레길의 마지막 구간 21코스를 미리 둘러봤습니다. 코발트빛 바다를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우도와 성산일출봉, 비스듬히 기운 가을볕을 받아 아름답게 물결치는 억새군락, 해가 넘어가고 난 뒤 핏빛 노을을 배경으로 중산간의 구릉에서 풀을 뜯고 있는 말. 청명한 가을날, 올레길과 오름을 딛고 가면서 제주에서 만나고 온 것들입니다. 여기다가 내친김에 몇 곳의 코스를 더 돌면서 차곡차곡 쌓여진 이야기도 찾아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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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올레 마지막 길에서 만난 세 장의 그림
제주 동쪽에서 놓기 시작한 올레길이 5년여 만인 오는 24일 섬을 한 바퀴 돌아 출발지점으로 돌아온다. 총연장 400㎞가 넘는 올레길의 완전 개통이 목전에 다가왔다.
마지막 길, 그 얘기부터 하자. 올레길 마지막 구간인 21코스는 섬 동쪽의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서 끝이 난다. 올레길이 끝나는 지점의 마을 이름 ‘종달(終達)’을 한자로 풀자면 ‘끝에 다다르다’는 뜻. 그러고 보니 올레길 제1구간이 시작되는 곳은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다. ‘시흥(始興)’의 ‘시’가 시작을 의미하니 올레길의 시작과 끝은 일찌감치 마을 이름에 담겨 있는 셈이다.
마을이 이런 이름을 갖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 몇 가지.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고종달이란 사신을 제주에 보냈는데 그가 처음 당도한 곳을 종달마을이라 이름 붙였다는 얘기. 또 제주 서쪽 두모리라는 마을이 있는데 ‘머리 두(頭)’ 자를 써서 제주도의 머리이고, 종달리는 ‘마칠 종(終)’ 자를 써서 제주도의 꼬리라고 했다는 주장도 있다. 제주 땅을 다스리던 목사(牧事)가 부임해 오면 지형도 익히고 민심도 살필 겸 섬을 한 바퀴 도는 ‘탐라순력’을 나섰는데, 그 출발 지점과 끝의 마을에 시와 종 자를 넣었다고도 전한다.
제주 올레 21코스는 제주 해녀박물관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해안을 따라 별방진과 각시당, 토끼섬 앞과 하도해수욕장을 지난다. 제주의 해안 풍경이야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만 이 구간에서 최고의 풍경을 보여주는 곳은 바로 해안 쪽에 딱 붙어 솟아오른 오름 지미봉이다. 지미(地尾)란 이름은 ‘땅의 꼬리’란 뜻. 올레길 마지막 구간으로 어찌나 딱 맞는 작명인지, 길이 여기까지 당도하길 기다려 이름을 품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제법 가파른 사면을 올라 지미봉의 정상에 서면 도대체 어디다 시선을 둬야 할지 망설여질 법하다. 사방 360도로 가장 ‘제주다운 풍경’을 담은 세 장의 그림이 펼쳐지니 말이다.
먼저 바다 쪽으로 보이는 한 장의 그림.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코발트빛 바다를 앞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풍경. 수심에 따라 채도가 달라지는 눈부신 청색의 바다 위로 고깃배들과 유람선들이 오가고, 내륙 안쪽에는 겨울의 초입에도 성성한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밭들이 펼쳐져 있다.
몸을 반대편으로 돌리면 이번에는 두 번째 그림 한 폭이다. 한라산을 정점으로 제주 동쪽의 오름군락들이 첩첩이 겹쳐진다. 멀찌감치 물러서서 바라보는 오름의 부드러운 선들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여기서 다시 몸을 오른쪽으로 돌려 줄곧 딛고 온 하도 쪽을 바라보면 세 번째 그림이다. 바다 쪽으로 불쑥 내민 곶 형태의 지형에 바다를 배경으로 빨간색과 파란색의 지붕을 얹은 집들이 ‘동화 속 세상’처럼 펼쳐진다. 한자리에서 제주의 가장 아름다운 그림 세 장이 펼쳐지니 여기서 더 무엇을 바랄까. 지미봉은 이른바 올레길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데 추호의 모자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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